🩸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라
― 심판 가운데 하나님께서 구별하시는 사람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출애굽기 12:13
출애굽기의 열 가지 재앙을 묵상하다 보면 한 가지 흐름이 눈에 들어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애굽 땅에 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구별하여 지키십니다.
그런데 마지막 열 번째 재앙에 이르면 그 구별의 표지가 더욱 선명해집니다.
고센 땅도 아니고, 이스라엘이라는 혈통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문에 발라진 ‘어린양의 피’였습니다.
1️⃣ “내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네 번째 파리 재앙에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 날에 나는 내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출애굽기 8:22
애굽에는 파리가 가득했지만 고센은 달랐습니다.
같은 애굽 땅에 살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 경계를 그으셨습니다.
재앙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계셨습니다.
세상이 혼란스러워져도 하나님께서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견디고 있는지,
어떤 형편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지를 모르지 않으십니다.
2️⃣ “이스라엘의 가축과 애굽의 가축을 구별하리니”
다섯 번째 가축 재앙에서는 구별이 더욱 구체적입니다.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가축과 애굽의 가축을 구별하리니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것은 하나도 죽지 아니하리라.”
출애굽기 9:4
하나님께서는 사람뿐 아니라 그들에게 속한 것까지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일곱 번째 우박 재앙에서는 고센 땅에 우박이 내리지 않았고(출 9:26), 아홉 번째 흑암 재앙에서는 애굽이 캄캄해졌지만 이스라엘 자손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습니다(출 10:23).
고센에는 빛이 있었습니다.
세상이 어두워졌다고 해서 하나님의 백성에게까지 반드시 같은 어둠이 지배하는 것은 아닙니다.
환경의 빛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빛이 있기 때문입니다.
3️⃣ 그런데 마지막 재앙에서는 ‘고센’만으로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열 번째 장자의 죽음 앞에서는 매우 중요한 변화가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출애굽기 12:13
이 말씀이 마음에 깊이 다가옵니다.
“내가 너희의 민족을 볼 때”가 아닙니다.
“내가 너희의 선행을 볼 때”도 아닙니다.
“내가 피를 볼 때”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사실 자체가 마지막 재앙을 피하는 표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어린양을 잡아 피 아래 머물러야 했습니다.
심판을 넘어가게 한 것은 그들의 의로움이 아니라 대신 죽은 어린양의 피였습니다.
4️⃣ 그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신약은 이 유월절 어린양을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합니다.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고린도전서 5:7
출애굽기의 어린양이 죽고 그 집의 장자가 살았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 앞에서는 내가 무엇을 얼마나 잘했는지가 최종적인 근거가 아닙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나를 구원하는 것은 나의 경력도, 열심도, 종교적인 행위도 아닙니다.
오직,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라.”
그 은혜입니다.
5️⃣ 심판 가운데에도 하나님의 목적은 구원입니다
이 말씀을 요한계시록의 나팔 재앙과 함께 묵상하니 더욱 선명해집니다.
출애굽기의 재앙에서도 하나님은 단순히 애굽을 파괴하시는 것으로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그 심판 가운데 자기 백성을 건져내셨습니다.
심판과 구원이 동시에 진행되었습니다.
십자가에서도 그렇습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가장 엄중하게 나타난 곳이 십자가이지만, 바로 그곳에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심판의 말씀을 읽을 때 두려움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그 가운데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이 있습니다.
“내게로 돌아오라.”
“어린양의 피 아래 있으라.”
“내가 너를 살리고자 한다.”
6️⃣ 내가 머물 곳은 ‘고센’보다 더 깊은 곳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는 때때로 하나님께서 내 환경을 고센처럼 만들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재앙이 오지 않고,
어려움이 비켜가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안전하고,
내 삶의 울타리를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물론 그것도 귀한 기도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그보다 더 깊은 곳으로 나를 부릅니다.
나의 진정한 안전은 고센이라는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고센에 있다고 해서 인생의 모든 고난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내가 붙들어야 할 것은
**‘재앙이 없는 삶’보다 ‘어린양 안에 있는 삶’**입니다.
7️⃣ 오늘 마음에 남는 말씀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내가 나를 바라보면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구원의 근거로 바라보시는 것은
나의 완전함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흘리신 피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두려움보다 믿음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고센을 구별하셨던 하나님,
흑암 가운데 빛을 두셨던 하나님,
어린양의 피 아래 있는 집을 넘어가셨던 하나님은
지금도 자기 백성을 아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하여 가는 길에서도 내가 붙들 것은 하나입니다.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
8️⃣ 기도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애굽에 재앙이 임할 때
고센 땅을 구별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지켜 주셨던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마지막 장자의 재앙 앞에서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어린양의 피를 보셨음을 기억합니다.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라” 하신 말씀처럼
나의 의와 열심이 아니라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게 하소서.
삶의 어려움이 모두 비켜가기를 구하는 믿음에 머물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자리임을 믿게 하소서.
세상이 어두워질 때에도
이스라엘이 거주하는 곳에 빛이 있었던 것처럼
내 마음에 주님의 빛을 밝혀 주소서.
심판의 말씀 속에서도
우리를 멸망시키려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돌이켜 살기를 원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보게 하시고,
오늘도 어린양의 피로 얻은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두려움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의 유월절 어린양 되시는, 삶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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